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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나

나, 미운오리 새끼 [드라마 - 미생]

자유주의자 Freedumb 2020. 6. 15. 10:50
길이란 걷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나아가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겨울,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바로 일을 하셔야 했고, 누나는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며

형은 지방에서 지내며 군대를 갔다. 모두 각자의 세계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 가족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나서게 했다.

 

나는 지옥 같은 중학교 생활에서 벗어났지만

남매 중에서 공부를 가장 못하는 막내에게 큰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스펙도 거의 없었다.

대학 때는 학점이나 취업에는 신경도 별로 쓰지 않고, 그냥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후배들을 괴롭히거나 연애를 하는 걸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 흔한 대기업 입사 같은 꿈도(물론 들어가면 좋겠지만),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희망도 열정도 없었다. 그냥 난 뭔가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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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패의 이유는 단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고 그것을 치열히 고민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줄줄이 입사에 실패하던 중 우연히 직업박람회를 통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일을 몇 년간 지속했다. 일은 나름 재미도 있었고 가끔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재능 있고, 멋있고 무엇보다 자기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이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며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그래, 그들이 보기엔 나는 미생의 장그래 같은 사람이었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능력도 백도 없는 낙하산. 딱 그랬다.

 

나를 뽑아준 같은 팀의 선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외면했고, 같은 팀의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결과지만 그땐 그런 그들이 원망스러웠고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아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지금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거다.

 

그 후 잠시 유학을 다녀오고 난 뒤, 난 내가 직접 선택한 회사로 들어가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했다.

 

내가 선택한 일 이어서 그런지 조직생활에서 사람들과 함께 배우며 부딪히고, 그런 과정에서 보람과 성취가 쌓였다. 

다른 회사원들처럼 해외로 출장도 다니고, 상사의 칭찬에 뿌듯해하고, 동료들과 함께 회식도 하면서 작은 추억들이 쌓이며 그렇게 인정받는 회사원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더 큰 글로벌 기업의 팀장 자리도 잠시나마 앉아 보았지만,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 후 인생의 다른 퍼즐 조각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조직생활에서 그리 좋은 후배나 좋은 상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그 물음 조차도 제대로 묻지 못하고 답을 얻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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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차피 인생의 모든 길을 갈 수 없다면 난 덜 밟힌 길로 가겠다. 항상 그래왔고 그것이 나의 유일한 북극성이었다.

 

사회생활의 흔한 실패와 성공스토리가 하나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에 조금 더 버텨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여러 조직을 거치면서 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자의나 타의로 여러 회사에서 일을 해야 했던 나로서는, 하나의 조직에서 10년 넘게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그럴 수 있는지 항상 묻고 싶었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게 더 이상 회사생활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그런 사람들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개인적인 버팀이건 조직을 너무 사랑함이건 간에 말이다.

 

모든 것이 장단점이 함께 있겠지만 난 내 인생의 후반부는 내가 좋아하는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내가 젊은 시절에 느껴보지 못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같다.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젠 어느 정도 한 조직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과도한 욕심은 버리고, 인생이 나에게 던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나를 맡기는 편이 되었다. 이번 생엔 나에게는 여러 가지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내가 몸담은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 주어진 모양이다.   

 

앞으로는 내가 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지금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일을 배우는 초짜의 모양이든 아님 일과 사람들을 관리하는 모양이든 간에, 그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이번에는 좀 더 잘해 볼 생각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조금더 많이 공부하고 그리고 조금 더 사람에게 집중을 할 생각이다. 미생의 장그래가 그랬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됩니다.

 

 

 

미생 시즌2도 드라마로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